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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원정대 in 2026 피스트레인, 그 기록을 공유합니다.

6월 13~14, 여름의 문턱에서 서로 다른 몸을 가진 장애 관객과 그 친구들이 함께 DMZ 피스트레인에 다녀왔습니다. ‘함께하면 좋겠다’는 이상을 ‘그럼 해보자!’라는 다정한 무모함으로 철원의 땅 위 현실로 만들어낸 여정이었는데요. 이 페이지는 그 여정을 남기고, 재현 가능한 다음으로 만들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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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순간도, 어려웠던 순간도 기록하고, 더 많은 분들께 알려서 — 이 경험이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도록이요!

📖 이렇게 둘러보세요


🩵 그리고, 다음을 위해

계단뿌셔클럽과 조금다른은 이 방식이 유효한지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첫 우정원정대를 보고, 더 많은 장애관객이 함께 하고 싶어졌을지, 또 포용적인 페스티벌 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지. 또 DMZ 피스트레인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가능할지요.

그러려면 "이 방식은 계속될 가치가 있다"는 동의가 필요해요. **1만 원으로 이 여정에 동의해주실 1,500명이 모이면,** 다음 우정원정대의 출발이 가능해집니다. 이 페이지를 찾아오신 ‘당신’이 그 일을 가능하게 해요.

▶️ 우정원정대 2기 후원하기

*이 페이지를 더 많은 친구들에게 공유해주시면, 더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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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목 차 ]

1. 해볼까? 우정원정대? 2. 이게… 안될지도 모르겠네? 3. 갑자기 찾아온 행운 4. 형광팔찌로 만들어낸 환대 5. 접근성 지원부스와 컴포터블존으로 만든 안심 6. 스스로 불러온 축제 🆒 7. 다음 경험으로 가려면 🆙 🆘


2025년 7월의 작은 질문이, 2026년 6월의 한 풍경으로

1년 전, 계단뿌셔클럽의 버기(이대호, 공동대표)가 (대책없이) 뉴스레터에 이렇게 적었어요.

“이 먼 철원의 피스트레인에 이동약자와 그 친구들이 다 함께 올 방법이 없을까요?” — 뿌클레터 (2025.7.3)

그로부터 1년이 지나,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그 친구들이 다 함께 정말로 피스트레인에 다녀왔습니다.

46명 1500명+ 50명
원정대원 (관객/스태프) 팔찌로 합류한 대원 함께한 후원자

1. 해볼까? 우정원정대?

💌 1년 전 버기가 던진 질문은 한 통의 답장을 받았어요. 그 답장이 이 프로젝트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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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뿌클 × 조금다른 크로스!

뿌하인드를 본 조금다른의 충현님이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이야기를 나눠보니 충현님도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에 다양한 사람들이 가서 어울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 해오셨더라고요. 그리고 결정적인 한마디.

"저, 예전에 피스트레인에서 일한 적도 있어요."

오,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것 같더라고요. 함께라면 우리가 못 하던 일이 가능해 보였습니다. 우정원정대를 꾸리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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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원정대: 장애인 관객을 포함한 누구나 자기답게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는 문화, 환경을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젝트로, 계단뿌셔클럽조금다른이 함께 시작했습니다. 2026년 DMZ 피스트레인에 ‘원정대(관객)’를 꾸렸고, 현장에서는 컴포터블존 (안전한 관람구역), 접근성 지원 및 우정원정대원을 모집하는 부스를 운영했습니다.

<우정원정대원의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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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무국과의 마찰 없는 협의

조금다른과 계단뿌셔클럽,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사무국 총감독님이 함께 찍은 사진.

조금다른과 공동기획으로 의기투합한 뒤, 생각보다 빨리 제안서를 들고 DMZ 피스트레인 사무국과 마주 앉았어요. 필요성을 설득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해서 갔는데, 다 허사였습니다.

"안 그래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방법을 고민하던 차였는데 먼저 제안해주셔서 감사하다."

— DMZ 피스트레인 사무국 김미소 총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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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순조로울 수가 있나?' 싶었습니다.


2. 이게… 안될지도 모르겠네?

한껏 부풀어 시작했지만, 곧 우리는 알게 됐어요.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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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 후원 요청의 어려움

3-4곳에 제안서를 보냈어요. 답변은 비슷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건,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승인이 나지 않은 경우였어요. 거절이 쌓이면서 의심이 선명해졌습니다.

'즐거움'을 향해 떠나는 모습은, 후원의 대상이 아닌 걸까? 우리가 만들고 싶은 장면은 우리만의 욕심일 뿐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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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장차 빌리기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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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 화장실 확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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